2017/8 [문화통신] 삶 속에 깊게 우러나는 축제의 맛에 대하여

2017
작성자
춘천아트페스티벌
작성일
2017-07-13 13:38
조회
1044
문화통신 8월호 칼럼 _ 삶 속에 깊게 우러나는 축제의 맛에 대하여

 

삶 속에 깊게 우러날 축제의 맛에 대하여

최웅집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바라보건대 작금의 공연 환경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앞두고 있다. 한편, 지자체나 행정에서는 생색내기 좋은 야외 행사 위주의 전시성 공연들만 좇고 있다. 기획자와 예술가들은 여기에 동조할 수밖에 없고 예술이 없는 공연예술축제가 판을 치고 있다. 그해의 주제를 선정하거나 예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순수 공연예술 축제로서의 고민이 점점 행정의 요구에 밀려나고 있다. 물론 즐기는 축제도 좋지만, 배우고 생각을 나누는 축제도 필요하다. 상업적 논리가 아닌, 예술가가 자기와의 싸움으로 빚어낸 고매한 정신세계를 담은 공연을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경험들은 오랜 시간 관객의 기억에 남아 그들의 삶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단순 재미를 요구하는 가십거리로 가득 차고, 선정적인 프로그램들뿐이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마저도 맞나 틀리냐 하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누는 ‘팩트 체크’의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감수성, 감성들은 어디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가서 진짜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을까? 이것은 나의 가장 오래된 고민 중 하나다.

서울에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선생님이 나눠 줬다고 하면서 공연 할인권을 들고 와서 보여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공연인가 봤더니 대학로에서 하는 웃찾사나 개그 콘서트 같은 공연의 홍보지였다. 당장 그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의 대학로에는 코미디극과 소위 ‘데이트 연극’이라 불리는 상업극이 판을 치는데, 어른들이야말로 기준을 제시하고, 아이들을 위한 좋은 공연의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에게 좋은 음식만 먹이고 싶다. 허기만 채우는 음식보다는 정직하고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 건강함이 자연스럽게 베어나는 곳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서울에서 춘천으로 다시 이사를 왔던 이유 중 하나가 우리 아이들이 춘천이라는 환경에서 자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자랄 때 그러했듯이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 시절에 입시에 매달리거나 눈앞의 경쟁에 시달리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춘천은 그런 의미에서 서울보다 조미료가 적은 도시이다. 적어도 춘천에는 28년 이상 된 공연예술의 육수가 깊숙이 배어 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을 처음 소개할 때 ‘16년’된 축제라고 하면 ‘지방의 이름 모를 작은’ 축제에 무심하던 이들도 그렇게 오래된 축제가 있냐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2002년부터니까 올해로 벌써 16회 춘천아트페스티벌이다.) <춘천마임축제>와 <춘천인형극제>가 1989년에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춘천에서는 <아트페스티벌>을 오래된 축제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이나 지방의 ‘이름 모를 작은’ 다른 축제와 비교해보면 비슷한 연배의 축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니 ‘오래’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자면, 춘천아트페스티벌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여 순수공연예술축제를 한 번 잘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연예술을 접하고 형들을 쫓아다니며 공연 속에서 자랐다. 춘천에서 공연과 함께 자랐고, 그렇기에 공연을 하는 일은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춘천에 돌려줄 수 있는 것 또한 내게는 공연예술, 그것뿐이었고 그것이 16년째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는 <춘천아트페스티벌>이다.

변함없이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하겠다. 나는 축제의 프로그래머, 이 축제의 ‘쉐프’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즐거워할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춘천아트페스티벌>의 관객들을 생각한다. 매년 8월 둘째 주에 만나는 관객들의 선한 웃음과 눈빛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를 준비한다. 오늘도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어린 시절 안겼던 엄마 품을 떠올리듯 오래된 기억, 어딘가에 숨겨둔 아주 오래된 꿈에 닿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공연의 맛을 우려내야겠다. 이것이 일상에 치여 미처 돌보지 못했던 우리의 숨은 ‘감수성’을 보듬을 수 있는 작은 제스처가 되기를 바란다.

2017년 5월말

아트페스티벌을 준비하며